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봉오동 전투(영화)/고증 (문단 편집) ==== 실제 감독의 발언과 인식 ==== 감독은 실제 (영화매체 가능한 범위에서) 고증에 맞췄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역사적 사실로 영화를 만들 때 작업하는 거보다 수집에 많은 공을 들이고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그래야 영화로 내놓을 수 있다. 봉오동 전투 경우 자료 수집 과정 고증하는 과정에서 많은 벽에 봉착했다. 사료들이 많이 있지 않다. 조선시대, 고려시대의 자료가 많이 남아있을 정도다. 봉오동 전투 경우 일제강점기 시대로 일본으로서는 우리나라의 승리의 감정을 축소하고 왜곡되어야 하는 일이다. 철저하고 숨겼고, 왜곡해 자료가 남지 않았다. 독립신문에 보면 봉오동 전투의 승리와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독립신문 기록을 근거로 해서 만들었다.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다. 할 수 있는 고증은 다 했다. 그러나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시대적 배경에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왜곡이 없게끔 노력했다. 그렇게 비워있는 부분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봉오동전투에 대해서 더 알려졌으면 한다 >---- >2019년 7월 29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영화 ‘봉오동 전투’의 언론배급시사회[[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371244|#]] >실제 역사이기 때문에 왜곡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상황을 재구성을 했을 뿐 삼군자 전투의 승리부터 죽음의 골짜기에서의 대승까지 모두 사료에 기록된 부분이다. >---- > 2019년 8월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되는 라운드 인터뷰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450545|#]]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이기 때문에 왜곡이나 고증 오류로 비칠까 조심했다(...)고증오류나 왜곡은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조사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숨겨져 있을 수 있어서 조심하게 되죠.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창작 작업으로 만들어낸 것보다 더 제한돼있죠. 창작 작업을 통한 영화는 관객이 생명력을 부여하고 함께 융화되는 등 각자 의미를 부여하는 확장성을 갖고 있지만, 역사 기반 영화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거든요. >---- >2019년 8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터뷰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11004493|#]] 감독 발언에 근거하면 (사건의 재구성이나 과장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 매체 한계 내에서 고증에 맞게 영화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실제 영화는 재구성이나 과장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위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독립신문 88호' 문제에서 보듯 감독은 자꾸 중요한 사료를 무시하고 엉뚱한 사료를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이미 약 20년 전에 논문에 소개가 된 중요자료들조차 언급하지 못 하고 있다. '영화매체에 따른 불가피한 과장이나 왜곡'으로 보기엔 조사를 성실하게 했는지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분류:영화 탐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